13세기, 유라시아의 넓은 지역을 지배한 몽골 제국의 세력이 바다 건너 일본까지 향했습니다. 몽골군은 정말 일본을 정복하려 했을지 오늘은 그 두 차례 원정과 가미카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일본을 이끌던 가마쿠라 막부는 이전과 전혀 다른 규모의 외부 공격을 맞게 됩니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이루어진 원정에는 몽골 뿐 아니라 원의 지배 아래 있던 고려의 병력과 선박도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차례 모두 일본 정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흔히 ‘가미카제라는 태풍이 일본을 구했다’고 알려진 이 전쟁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쿠빌라이 칸은 왜 바다 건너 일본에 사신을 보냈을까?
13세기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중국에 원을 세우고 동아시아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고려 역시 오랜 전쟁 끝에 몽골에 복속되어 원의 강한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빌라이는 일본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126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관계를 맺고 자신들에게 복속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국서를 전달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막부는 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적극적인 답변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사신이 여러 차례 오갔지만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쿠빌라이는 군사적인 원정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몽골군이 말을 타고 육지를 이동하는 것과 바다를 건너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대규모 병력을 일본까지 보내려면 많은 배와 선원, 항해기술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가 크게 동원되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원의 영향 아래 있었고 일본 원정을 위한 선박 건조와 군사, 선원, 식량 등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일본 원정을 단순히 ‘몽골과 일본의 전쟁’이라고만 설명하면 당시의 복잡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274년 첫 번째 원정군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분에이의 역’이라고 부릅니다. 원정군은 고려를 출발해 쓰시마와 이키를 공격한 뒤 규슈 북부의 하카타만으로 향했습니다.
일본 무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전투 방식도 등장했습니다. 원정군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활과 다양한 무기를 사용했고 화약을 이용한 폭발성 무기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측 기록과 그림 자료에는 폭발하는 무기가 묘사되어 있어 당시 일본 무사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원정은 일본을 정복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원정군은 배로 물러났고 이후 바다에서 악천후를 만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정말 태풍 하나가 거대한 몽골군을 물리친 것일까요?
1274년 첫 원정, 정말 태풍 때문에 몽골군이 물러났을까?
몽골의 일본 원정을 이야기할 때 가장 유명한 것이 태풍입니다. 강력한 바람과 파도가 원정군의 배를 파괴했고 그 덕분에 일본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274년 첫 번째 원정의 철수를 단순히 ‘태풍이 불어서 몽골군이 패했다’라고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부적인 설명에는 차이가 있으며 원정군의 철수에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정군은 쓰시마와 이키를 거쳐 하카타 지역까지 진격했습니다. 일본 무사들은 원정군과 전투를 벌였고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습니다. 원정군 입장에서도 낯선 지역에서 계속 싸우려면 병력과 식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군대에는 특히 보급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물자를 현지에서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면 배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날씨가 나빠져 배가 움직이지 못하면 육지에 있는 군대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전투 이후 원정군은 배로 돌아갔고 밤사이에 강한 바람과 파도를 만난 것으로 기록됩니다. 일부 선박이 침몰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일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큰 규모의 두 번째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일본도 첫 번째 공격을 경험한 뒤 다시 침략이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비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는 규슈 지역의 방어를 강화했고 하카타만 해안을 따라 돌로 만든 방어벽을 쌓도록 했습니다. 흔히 ‘겐코 보루’라고 불리는 시설입니다.
무사들도 규슈 지역에서 경계를 이어갔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원정을 맞은 일본은 첫 번째 공격 당시보다 방어 준비가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점은 몽골의 일본 원정을 이해할 때 중요합니다. 첫 번째 원정에서 자연환경이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 측 역시 전투를 벌였으며, 이후에는 다시 공격이 올 것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방어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를 날씨 하나만으로 설명하면 당시 사람들의 대응과 군사적인 상황, 바다를 건너야 했던 원정의 어려움을 놓칠 수 있습니다.
1281년 더 거대한 원정군이 찾아오다, ‘가미카제’ 이야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1281년 원은 다시 일본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고안의 역’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원정은 첫 번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준비되었습니다.
당시 원은 남송을 멸망시킨 뒤 중국 남부의 병력과 선박까지 일본 원정에 동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정군은 크게 고려를 거쳐 출발한 동로군과 중국 남부에서 출발한 강남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부대가 움직이는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출발 시기와 합류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대규모 병력을 바다 건너 이동시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본 측 역시 첫 번째 원정 이후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카타만의 방어벽 때문에 원정군이 쉽게 상륙하기 어려웠고 일본 무사들은 작은 배를 이용해 원정군의 함선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양측이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지던 중 1281년 여름 강력한 폭풍이 원정군을 덮쳤습니다. 많은 선박이 파괴되고 수많은 병력이 목숨을 잃거나 일본군에 붙잡혔습니다. 결국 두 번째 원정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나라가 신들의 보호를 받았으며 특별한 바람이 적을 물리쳤다는 생각이 퍼졌습니다. 이러한 바람을 ‘신의 바람’이라는 뜻의 가미카제(神風)라고 부르게 됩니다.
다만 두 차례 원정이 모두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태풍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두 번째 원정에서는 폭풍이 원정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그 이전부터 일본의 방어와 원정군의 보급 및 지휘 문제, 해상작전의 어려움 등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또한 이 전쟁은 일본뿐 아니라 고려에도 큰 부담을 남겼습니다. 고려에서는 원정에 필요한 많은 배를 건조해야 했고 병력과 선원, 물자도 동원되었습니다. 일본 원정의 역사 뒤에는 원의 지배 아래에서 전쟁 준비에 참여해야 했던 고려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은 두 차례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가마쿠라 막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에서 새로운 영토를 차지하면 그 땅을 공을 세운 무사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외부에서 침입한 군대를 막아낸 전쟁이었습니다.
막부는 싸움에 참여한 무사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기 어려웠고 오랫동안 방어태세를 유지하는 데에도 많은 부담이 들었습니다. 막부에 대한 무사들의 불만은 점차 커졌고 이는 훗날 가마쿠라 막부가 약해지는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두 차례의 몽골 원정은 태풍만으로 결정된 전쟁이 아니라 일본 측의 방어, 원정군의 해상작전과 보급 문제, 자연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진 뒤 등장한 무로마치 막부와 아시카가씨가 일본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