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다이묘가 각자의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전국시대, 그 혼란 속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힌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입니다. 오늘은 전국시대의 판을 뒤흔든 오다 노부나가가 무엇을 바꾸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노부나가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경쟁자들을 물리쳤고 교토에 진출하여 일본 통일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조총을 활용한 전투와 아즈치성, 상업정책 등 그의 이름과 함께 따라다니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 통일을 완성하기 직전 예상하지 못한 배신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전국시대의 흐름을 크게 바꾸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작은 지역의 다이묘에서 강자로, 오다 노부나가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오다 노부나가는 1534년 오와리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오와리는 오늘날 아이치현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당시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의 통제력이 약해지고 각 지역의 다이묘들이 서로 경쟁하던 전국시대였습니다.
노부나가가 처음부터 일본을 뒤흔들 정도의 압도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가 세상을 떠난 뒤 가문 내부의 경쟁을 거쳐 오와리 지역의 지배권을 강화해야 했습니다. 주변에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노부나가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대표적인 사건이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입니다. 당시 스루가와 도토미 등을 지배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병력 규모에서 불리했던 노부나가는 이마가와군을 공격했고 결국 요시모토가 전사하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를 계기로 노부나가는 전국시대의 중요한 다이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떠올랐습니다. 이후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고 주변의 경쟁세력들을 차례로 공격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아시카가 요시아키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요시아키는 쇼군이 되기를 원했고 노부나가의 군사력을 이용해 교토로 진출하려 했습니다. 노부나가는 1568년 군대를 이끌고 교토에 들어갔으며 요시아키는 제15대 쇼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요시아키는 점차 강해지는 노부나가를 견제하려 했고 노부나가와 대립하는 여러 세력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결국 1573년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몰아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사건을 무로마치 막부가 끝난 중요한 시점으로 봅니다.
노부나가에게는 여전히 강력한 경쟁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사쿠라씨와 아자이씨를 비롯한 다이묘들과 싸웠고, 불교계의 일부 강력한 무장세력과도 충돌했습니다. 1571년에는 히에이산 엔랴쿠지를 공격하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노부나가의 가혹한 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따라서 노부나가는 단순히 뛰어난 전투 능력만으로 성장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동맹을 활용하고 기존의 정치질서를 이용하는 한편 자신에게 저항하는 세력을 강하게 공격하면서 전국시대의 권력관계를 빠르게 바꾸어갔습니다.
조총만으로 승리했다? 노부나가가 전쟁과 영지를 바꾼 방법
오다 노부나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조총’입니다. 특히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노부나가의 군대가 많은 조총을 사용하여 다케다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과거에는 노부나가가 약 3,000명의 조총병을 세 줄로 나누어 차례대로 발사하면서 다케다의 기마부대를 격파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3단 사격’ 방식이 실제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신중하게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노부나가 측이 나가시노 전투에서 조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목책과 지형을 이용하고 많은 병력을 조직하는 등 여러 요소가 승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신무기 하나로 기마부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단순하게 이해하기보다 새로운 무기를 기존 전술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노부나가의 변화는 전쟁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영토를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면 경제적인 힘이 필요했습니다. 군대를 유지하고 성을 건설하며 많은 부하를 거느리려면 활발한 상업과 물자 유통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노부나가의 이름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것이 ‘라쿠이치·라쿠자’입니다. 시장의 각종 특권과 장벽을 줄이고 상업 활동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가리킵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을 노부나가가 일본에서 처음 만든 것은 아니며 이전의 다른 다이묘들도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노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를 확보하고 상인과 도시를 활용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뒷받침할 경제적인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상업의 발전은 세금을 확보하고 군사활동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1576년부터는 비와호 근처에 아즈치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즈치성은 단순한 전투용 산성에서 벗어나 높은 석벽과 웅장한 건축물을 갖춘 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부나가의 권력과 위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과의 교류에도 비교적 적극적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상인 등을 통한 남만무역이 이루어졌고 선교사들도 활동했습니다. 노부나가는 그리스도교를 믿었던 인물은 아니지만 선교사들의 활동을 허용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존 불교세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노부나가를 ‘모든 옛 제도를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일본을 만든 혁명가’처럼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그가 사용했던 여러 정책 가운데에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기존 방식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무기와 경제정책,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그의 세력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천하통일을 앞두고 일어난 혼노지의 변, 노부나가는 왜 죽었을까?
158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부나가의 세력은 일본 중부를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여러 경쟁자를 물리쳤고 오랫동안 저항했던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싸움도 끝났습니다. 이제 그의 부하들은 일본 각지에서 남아 있는 강력한 다이묘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시바 히데요시, 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쪽 주고쿠 지방에서 모리씨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노부나가는 자신도 서쪽으로 향할 준비를 했습니다.
1582년 6월, 노부나가는 소수의 수행원과 함께 교토의 혼노지라는 사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아케치 미쓰히데가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혼노지를 공격했습니다.
노부나가는 충분한 병력을 데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빠져나가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불타는 혼노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것이 일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혼노지의 변’입니다.
그렇다면 미쓰히데는 왜 자신의 주군을 배신했을까요? 놀랍게도 그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받은 모욕이나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라는 이야기부터 정치적 야심, 주변 인물과의 관계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확실한 사실처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이런 수수께끼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지금까지도 일본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노부나가가 죽자 일본의 통일 과정이 다시 혼란에 빠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멀리 서쪽에서 모리씨와 싸우고 있던 히데요시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모리 측과 서둘러 화의를 맺은 뒤 군대를 돌려 교토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물리쳤습니다.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지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미쓰히데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후계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결국 자신이 시작한 통일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로마치 막부를 끝내고 여러 강력한 경쟁세력을 무너뜨리며 일본의 정치지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만들어 놓은 기반 위에서 히데요시는 통일 과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새로운 무기와 경제적 기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국시대의 기존 세력관계를 크게 뒤흔든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고 가장 가까운 부하 가운데 한 사람의 공격으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낮은 신분에서 출발해 일본의 최고 권력자 자리까지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 전국시대를 통일해 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