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일본의 통일 과정도 멈추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빠르게 움직이며 새로운 중심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떻게 낮은 신분에서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일본을 통일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비교적 낮은 신분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진 히데요시는 뛰어난 정치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일본 대부분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었습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조선을 침략하면서 동아시아에 거대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큰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평범한 출신에서 노부나가의 부하로, 히데요시는 어떻게 출세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30년대 오와리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아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전국시대의 전통적인 유력 무사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히데요시는 젊은 시절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중요한 장군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점차 능력을 인정받으며 높은 위치로 올라갔습니다. 일본 역사에서는 낮은 신분에서 최고 권력자까지 성장한 그의 출세 과정이 특히 유명합니다.
그의 이름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도요토미’라는 성을 처음부터 사용한 것도 아닙니다. 한때 하시바 히데요시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훗날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라는 성을 받았습니다.
노부나가 아래에서 히데요시는 여러 전투와 성 공략에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전투에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뿐 아니라 협상과 전략을 활용하는 데에도 능력을 보였습니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확대하면서 히데요시 역시 중요한 지휘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꾼 사건은 1582년 혼노지의 변이었습니다. 당시 히데요시는 일본 서쪽에서 모리씨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케치 미쓰히데가 교토의 혼노지에서 노부나가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히데요시는 모리 측과 빠르게 화의를 맺은 뒤 군대를 이끌고 교토 방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빠른 이동은 흔히 ‘주고쿠 대회군’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파했습니다.
노부나가의 죽음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여 미쓰히데를 물리친 히데요시는 자연스럽게 오다 세력 내부에서 영향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다 가문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유력자 사이에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히데요시는 시바타 가쓰이에 등 경쟁세력을 물리치고 점차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대립했지만 결국 정치적인 관계를 조정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이처럼 히데요시의 성공은 단순한 행운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국시대의 급변하는 상황에서 언제 싸우고 언제 협상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며 빠르게 움직였던 능력이 그의 출세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사카성과 전국 통일, 히데요시는 어떻게 다이묘들을 굴복시켰을까?
노부나가 사후 권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히데요시는 일본 각 지역의 다이묘들을 자신의 지배질서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1583년에는 오사카성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오사카성은 히데요시의 정치적·군사적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의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성 주변에는 많은 상인과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오사카가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히데요시는 쇼군이 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정의 관직을 활용해 자신의 권위를 높였습니다. 1585년에는 천황을 보좌하는 최고위 관직인 ‘관백’에 올랐고 이후 ‘태정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86년에는 ‘도요토미’라는 성을 받았습니다.
그는 군사력과 정치적인 관계를 함께 이용하며 각 지역의 다이묘들을 복종시켰습니다. 시코쿠와 규슈의 강력한 세력들을 차례로 굴복시켰고 마지막으로 간토 지역의 후호조씨가 남았습니다.
1590년 히데요시는 대군을 동원하여 후호조씨의 거점인 오다와라성을 포위했습니다. 결국 후호조씨가 항복하면서 일본의 주요 다이묘들이 히데요시의 지배 아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시점을 히데요시가 전국 통일을 완성한 때로 봅니다.
하지만 통일은 단순히 전쟁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넓어진 영토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제도도 필요했습니다.
히데요시는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는 ‘태합검지’를 실시했습니다. 논밭의 면적과 생산력을 조사하여 토지와 농민을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했습니다. 토지의 생산력은 쌀의 양을 기준으로 표시되었고 이는 다이묘들의 세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농민이 무기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도수령’을 실시했습니다. 칼과 창, 조총 등의 무기를 거두도록 하면서 무사와 농민의 신분을 점차 구분하려 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농민이 필요에 따라 무기를 들고 전투에 참여하거나 무사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통치 아래에서는 무사는 군사와 통치를 담당하고 농민은 농업에 종사하는 방향으로 신분질서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히데요시 자신은 낮은 신분에서 최고 권력자까지 올라갔지만, 통일 이후에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신분을 뛰어넘어 성장하기 어려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갔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세우고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반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을 통일한 뒤 조선을 침략하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을까?
일본 통일을 거의 완성한 히데요시는 시선을 일본 밖으로 돌렸습니다. 그는 명나라까지 진출하려는 야심을 보였고 조선에 일본군이 지나갈 길을 제공하고 협력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조선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군사적인 침략을 시작했습니다.
1592년 대규모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의 첫 번째 침략을 ‘분로쿠의 역’이라고 부릅니다.
전쟁 초기 일본군은 빠르게 북쪽으로 진격했습니다. 조선군은 갑작스러운 대규모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곳이 많았고 한양도 일본군에게 점령되었습니다. 선조는 한양을 떠나 북쪽으로 피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빠르게 진격했다고 해서 전쟁이 그대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각지에서 군대가 다시 정비되었고 의병들도 일어났습니다. 명나라도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과 여러 차례 싸워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활동은 일본군이 바닷길을 통해 병력과 물자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데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과 명 사이에는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양측의 요구가 크게 달랐고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1597년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이를 정유재란이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게이초의 역’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침략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1598년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면서 일본군에는 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같은 해 일본군이 조선에서 철수하면서 약 7년에 걸친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은 조선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농경지와 도시, 문화유산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일본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남았습니다. 오랜 해외전쟁에 많은 병력과 물자가 투입되었고 여러 다이묘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그가 만들어 놓았던 정치질서를 누가 이어갈 것인지도 새로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히데요시에게는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있었지만 스스로 정권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히데요시는 유력 다이묘들이 어린 아들을 보좌하도록 정치체제를 마련했지만 그의 사망 이후 권력의 균형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인물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히데요시의 시대까지 살아남았던 이에야스에게 마침내 일본의 최고 권력을 차지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낮은 신분에서 출발해 전국의 다이묘들을 굴복시키고 일본 통일을 완성했지만, 이후 조선을 침략하여 동아시아에 막대한 피해를 남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히데요시 사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