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의 모습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야마토 정권 이야기
야요이 시대에는 벼농사가 확산되고 여러 마을과 작은 정치집단이 성장했습니다. 오늘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모습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야마토 정권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흩어져 있던 세력들은 언제부터 하나의 큰 정치세력을 이루기 시작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야마토 정권’입니다. 오늘날 일본이라는 국가가 그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야마토 정권의 성장은 이후 일본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무덤인 고분부터 한반도와 중국 대륙과의 교류까지, 야마토 정권이 성장했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거대한 무덤이 나타났다! 야마토 정권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야요이 시대 후기가 되면서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에는 크고 작은 정치세력이 존재했습니다. 3세기 중국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야마타이국과 여왕 히미코 이야기도 당시 여러 정치집단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이후 3세기 중반 무렵부터 일본 열도에는 이전과 다른 거대한 무덤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대략 3세기 중반부터 7세기 무렵까지를 ‘고분 시대’라고 부릅니다. 고분은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무덤으로, 당시 유력자들의 권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특히 위에서 바라보면 앞부분은 네모나고 뒷부분은 둥근 열쇠 구멍과 비슷하게 생긴 ‘전방후원분’이 유명합니다. 규모가 매우 큰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과 상당한 시간, 물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거대한 고분은 그 무덤에 묻힌 사람이 많은 사람과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권력자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시기에 오늘날의 나라현을 중심으로 한 긴키 지방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이 성장했습니다. 이를 일반적으로 야마토 정권이라고 부릅니다. 야마토 정권은 처음부터 오늘날 일본 전체를 완전히 지배한 중앙정부였던 것은 아닙니다.
각 지역에는 여전히 강한 세력을 가진 유력자들이 존재했습니다. 야마토의 지배층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점차 영향력을 넓혀갔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형태의 고분이 발견되는 것도 당시 유력자들 사이에 정치적·문화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야마토 정권의 최고 지배자는 ‘오키미(大王)’라고 불렸습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큰 왕’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황’이라는 칭호가 처음부터 똑같은 형태로 사용된 것은 아니므로 초기 야마토 정권을 설명할 때는 오키미라는 표현을 함께 알아두면 좋습니다.
고분 주변에서는 사람이나 동물, 집과 각종 물건의 모습을 본떠 만든 ‘하니와’라는 토제품도 발견됩니다. 하니와는 고분의 주변이나 위에 세워졌으며 당시 사람들의 옷차림과 건축물, 무기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글로 된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시대이기 때문에 고분과 하니와, 무기와 장신구 같은 유물은 당시 사회를 알아가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거대한 고분 하나를 통해서도 일본 열도에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와 정치집단이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와의 활발한 교류가 야마토 사회를 변화시키다
야마토 정권이 성장하는 과정은 일본 열도 안에서 일어난 변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륙과 한반도, 일본 열도 사이에 사람과 물건, 기술과 문화가 활발하게 오갔습니다.
특히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교류는 야마토 정권과 고대 일본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전해졌고 야마토 정권 역시 한반도의 여러 나라와 다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여러 세력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했고 바다 건너 일본 열도의 세력들과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오늘날의 국경선만을 기준으로 각각 완전히 떨어진 이야기처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일본 열도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흔히 ‘도래인’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을 통해 여러 기술과 문화가 전해졌습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이나 토목·건축과 관련된 기술을 비롯하여 직조, 도자기 제작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문자문화의 확산에서도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영향이 중요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오늘날과 같은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를 받아들여 사용하게 됩니다. 한자는 중국에서 직접 또는 한반도와의 교류를 통해 일본 사회에 전해졌습니다.
이후에는 유교와 불교를 비롯한 사상과 종교, 정치제도 등도 동아시아 교류 속에서 일본에 들어오게 됩니다. 특히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는 백제와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야마토 정권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글을 읽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이나 전문적인 제작기술은 정치조직을 운영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 열도에서도 여러 물품과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이동했습니다. 즉 문화가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동했다기보다 당시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야마토 정권의 성장은 이처럼 일본 열도 내부의 정치적인 변화와 주변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가 함께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바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세력을 하나로 묶으며 고대국가의 기틀을 만들어가다
야마토 정권이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여러 지역의 유력자들을 정치적인 질서 안에 묶는 방법도 필요해졌습니다. 당시에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에 관리들을 직접 보내는 오늘날과 같은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야마토 정권은 각 지역의 유력한 씨족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씨족은 혈연이나 정치적인 관계 등을 바탕으로 형성된 집단으로, 야마토 정권 안에서도 여러 유력 씨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각 씨족은 정치나 군사, 제사와 같은 특정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권의 중심에서는 이들 세력을 적절히 활용하고 통제하면서 지배체제를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러 세력이 항상 평화롭게 협력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둘러싼 경쟁도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소가씨와 모노노베씨처럼 강력한 씨족들이 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6세기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뒤에는 불교를 받아들이는 문제도 정치적 갈등과 연결되었습니다. 새로운 종교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세력과 기존의 전통적인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력이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경쟁 속에서 야마토 정권의 정치체제도 계속 변화했습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로 넘어가면서 쇼토쿠 태자와 관련된 정치 개혁이 등장하고 중국의 수나라와 교류하면서 새로운 정치제도를 배우려는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7세기에는 당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한반도의 정세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환경 속에서 야마토의 지배층은 더욱 강력하고 체계적인 국가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645년의 정치적 변화를 계기로 이른바 ‘다이카 개신’으로 이어지는 여러 개혁이 추진되었고, 이후 중국의 율령제도를 참고하여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갖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배자의 권위도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일본’이라는 국호와 ‘천황’이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도 이러한 고대국가 형성 과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정확히 언제부터 각각의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사료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야마토 정권은 어느 날 갑자기 일본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완성된 국가를 만든 세력이라고 보기보다는 여러 지역의 유력자들을 연결하고 주변 국가의 제도와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점차 중앙집권적인 고대국가로 발전해 간 정치세력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야요이 시대에 성장했던 여러 정치집단은 야마토 정권을 중심으로 점차 더 큰 정치질서를 형성해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분을 만들던 지배자들의 사회는 법과 제도를 갖춘 고대국가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고분과 여러 씨족, 활발한 동아시아 교류를 바탕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은 일본 고대국가 형성의 중요한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수도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불교문화와 국가제도가 크게 발전했던 ‘나라 시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