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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수도, 나라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양쿠미 2026. 9. 4. 14:05

일본의 고대국가가 점차 모습을 갖추면서 정치의 중심이 되는 수도도 필요해졌습니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수도, 나라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까요?

 

710년에는 오늘날 나라 지역에 ‘헤이조쿄’라는 새로운 수도가 세워졌고, 이때부터 약 70여 년간을 나라 시대라고 부릅니다. 나라 시대에는 법과 행정제도가 정비되고 불교가 국가적으로 크게 발전했으며 중국을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거대한 사찰과 불상부터 『고사기』와 『일본서기』 같은 역사서까지, 일본 고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이 등장했던 나라 시대로 떠나보겠습니다.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수도, 나라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수도, 나라 시대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710년 만들어진 헤이조쿄, 일본에는 왜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을까?

나라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은 710년 수도가 헤이조쿄로 옮겨진 것입니다. 헤이조쿄는 오늘날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건설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정치의 중심지는 존재했지만 천황이 바뀔 때마다 궁궐과 수도가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헤이조쿄가 만들어지면서 이전보다 크고 체계적으로 계획된 수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헤이조쿄를 만들 때 일본이 참고한 곳은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었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였고 정치제도와 도시문화도 크게 발전해 있었습니다. 일본은 당나라의 여러 제도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국가체제를 정비하려 했습니다.

헤이조쿄에는 천황이 생활하고 정치가 이루어지는 궁궐이 있었으며 도시에는 도로가 바둑판처럼 계획적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관리와 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시장과 사찰 등도 자리 잡았습니다. 수도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국가의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지는 중심지였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율령’이라는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려 했습니다. 율은 오늘날의 형법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규정이고 령은 행정과 국가 운영에 관한 여러 제도를 담았습니다. 중국의 제도를 참고했지만 일본의 상황에 맞게 받아들였습니다.

국가는 전국의 토지와 사람을 파악하고 세금을 거두며 지방을 관리하려 했습니다. 지방에는 관리가 파견되었고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전국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여러 제도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과 통신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중앙정부의 힘을 똑같이 미치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귀족과 유력한 가문들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귀족 가문이 정치에서 강한 힘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라 시대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함께 존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헤이조쿄의 건설은 일본 고대사에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커다란 수도를 중심으로 천황과 관리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법과 행정체계를 갖추면서 일본은 이전보다 더욱 체계적인 고대국가의 모습을 만들어갔습니다.

 

거대한 불상을 만든 이유는? 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문화

나라 시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는 나라 시대보다 앞서 한반도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천황과 귀족을 중심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나라 시대에는 불교가 개인적인 신앙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기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염병과 자연재해, 흉작과 정치적인 혼란처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배층은 불교의 힘을 통해 국가의 평안과 질서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8세기 중반 쇼무 천황은 각 지방에 고쿠분지와 고쿠분니지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전국에 사찰을 두고 불교를 통해 국가의 안정을 기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 시대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찰이 바로 도다이지입니다. 도다이지에는 거대한 비로자나불상이 만들어졌는데 흔히 ‘나라의 대불’이라고도 불립니다. 지금도 일본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불상을 만드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양의 금속과 목재를 비롯한 자원이 필요했고 수많은 기술자와 노동력이 동원되었습니다. 따라서 대불은 당시 불교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국가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자원을 움직일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찰은 종교적인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기록을 남기며 새로운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불상과 사찰을 만들면서 건축과 조각, 회화와 공예 같은 분야도 함께 발전했습니다.

나라의 또 다른 유명한 사찰인 쇼소인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다양한 물건들이 전해집니다. 특히 그 가운데에는 일본에서 만든 물건뿐 아니라 대륙과 서역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있어 당시 국제적인 문화교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를 여행하면 오래된 사찰과 불상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유도 이 시대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라 시대의 불교문화는 현재까지도 일본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견당사는 무엇을 가져왔을까? 『고사기』와 『일본서기』도 만들어지다

나라 시대의 일본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특히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던 당나라의 선진적인 정치제도와 문화를 배우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일본에서는 ‘견당사’라고 불리는 사절단을 당나라로 보냈습니다. 견당사의 배에는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유학생과 승려 등도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당나라에서 정치제도와 학문, 불교와 문화를 배우고 여러 서적과 지식을 일본으로 가져왔습니다.

 

당시의 항해는 오늘날처럼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바람과 파도에 의존해 바다를 건너야 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사절단을 보낸 것은 당시 당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국가 발전에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류의 대상은 중국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의 여러 나라와 이어져 온 교류도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당나라 자체가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으로 전해진 문화 가운데에는 훨씬 먼 지역에서 시작된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라 시대에는 일본의 신화와 역사 등을 문자로 정리한 중요한 책들도 등장합니다. 712년에는 『고사기』가 완성되었고 720년에는 『일본서기』가 편찬되었습니다.

두 책에는 일본의 신화와 천황의 계보, 여러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역사책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작성된 것은 아니며 신화적인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기록된 모든 이야기를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두 책은 고대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원과 정치질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했는지를 알아보는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특히 『일본서기』에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 등 주변 지역과 관련된 내용도 등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기록과 비교하면서 연구되기도 합니다.

나라 시대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 알려진 『만요슈』도 편찬되었습니다. 천황과 귀족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노래들이 담겨 있어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처럼 나라 시대는 외부의 문화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국가제도와 문화, 역사 기록을 만들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헤이조쿄의 거리와 거대한 사찰, 견당사의 배와 오래된 역사책을 하나씩 연결해 보면 나라 시대의 모습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나라 시대에는 헤이조쿄를 중심으로 국가제도가 정비되고 불교문화와 국제교류, 역사 기록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수도가 헤이안쿄로 옮겨지며 화려한 귀족문화가 꽃피었던 ‘헤이안 시대’ 이야기를 만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