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의 화려한 시대, 헤이안 시대와 교토 이야기
나라 시대가 끝나갈 무렵 일본의 수도는 다시 이동합니다. 오늘은 귀족들의 화려한 시대, 헤이안 시대와 교토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794년 새로운 수도 ‘헤이안쿄’가 만들어지면서 약 400년에 걸친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토로 이어지는 이 도시에서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화려하고 독특한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겐지 이야기』와 히라가나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대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귀족사회 뒤에서는 훗날 일본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무사들이 조금씩 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궁중문화와 정치적 변화가 함께 진행되었던 헤이안 시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794년 헤이안쿄로 수도를 옮기다, 교토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나라 시대에는 헤이조쿄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8세기말 간무 천황은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합니다. 784년 나가오카쿄로 수도를 이전했다가 794년 다시 헤이안쿄로 옮겼습니다. 이때를 일반적으로 헤이안 시대의 시작으로 봅니다.
‘헤이안’은 평안하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헤이안쿄는 오늘날의 교토에 해당하며 이후 오랫동안 일본의 정치와 문화에서 중요한 도시가 됩니다. 1868년 메이지 천황이 도쿄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교토에는 천황의 궁정이 자리했습니다.
헤이안쿄 역시 중국의 도시계획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시에는 남북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계획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천황이 생활하고 정치를 하는 궁궐을 중심으로 여러 시설이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은 이전처럼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9세기말에는 당나라에 보내던 견당사도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중국에서 받아들였던 문화를 바탕으로 일본의 환경과 생활에 맞는 독특한 문화가 더욱 발전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흔히 ‘국풍문화’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이라기보다 이미 받아들인 대륙의 문화를 토대로 일본 사회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성장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시 수도의 중심에는 천황과 귀족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높은 신분의 귀족들은 커다란 저택에서 생활하며 정치와 문화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헤이안 시대라고 하면 떠올리는 화려한 옷과 아름다운 정원, 시와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주로 이러한 상류 귀족사회의 문화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사람 모두가 이런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농사를 짓거나 여러 생업에 종사하며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기록과 문학작품을 통해 많이 접하는 귀족들의 모습은 헤이안 시대 사회 전체 가운데 한 부분이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이안쿄는 단순히 새로운 수도 하나가 만들어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의 정치와 귀족문화가 발전했고, 훗날 교토라는 도시가 일본 역사와 전통문화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는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후지와라씨는 어떻게 천황보다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까?
헤이안 시대의 정치에는 천황이 존재했지만 실제 정치에서는 강력한 귀족 가문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가문이 ‘후지와라씨’입니다.
후지와라씨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넓히는 데 활용한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천황 가문과의 혼인이었습니다. 후지와라 가문의 여성을 천황이나 황태자와 혼인시키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음 천황이 되면 후지와라 가문의 외할아버지나 외삼촌 등이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천황이 어릴 때 대신 정치를 하는 사람을 ‘섭정’, 성인이 된 천황을 보좌하면서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관백’이라고 합니다. 후지와라씨는 이러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전반에 활동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시기에 후지와라씨의 권세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됩니다. 자신의 딸들을 천황가와 혼인시키며 외척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의 정치가 처음부터 끝까지 후지와라씨에게만 좌우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천황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정’이라는 방식이 나타나면서 정치권력의 구조도 달라집니다.
수도에서 귀족들이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동안 지방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중앙정부가 일본의 모든 지방을 직접 세밀하게 관리하기는 어려웠고, 귀족과 사찰 등이 소유한 장원도 점차 늘어났습니다.
토지와 재산을 보호하고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무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방의 무사들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귀족이나 지방의 유력자를 위해 일하던 무사들이 점차 자신들의 세력과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무사들 가운데 특히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한 것이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였습니다. 두 세력은 훗날 일본의 정치권력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따라서 헤이안 시대는 단순히 귀족들이 화려하게 살았던 평화로운 시대로만 볼 수 없습니다. 수도에서는 귀족정치가 전개되는 동안 지방에서는 무사들이 성장했고, 이 변화가 결국 일본의 정치 중심을 귀족에서 무사로 이동시키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겐지 이야기』와 히라가나, 헤이안 귀족들은 어떤 문화를 즐겼을까?
헤이안 시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문학과 예술입니다. 귀족사회에서는 아름다운 글씨를 쓰고 시를 지으며 음악과 그림을 즐기는 것이 중요한 교양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남녀가 서로 마음을 전달할 때도 시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종이에 어떤 글씨로 시를 적었는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까지 상대방의 교양과 감각을 보여주는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일본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도 나타납니다. 바로 ‘가나’ 문자의 발달입니다.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전해진 한자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일본어를 표현하기에는 불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한자를 바탕으로 일본어를 보다 편리하게 적을 수 있는 가나 문자가 발전하면서 문학작품도 활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늘날 일본어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히라가나 역시 이러한 역사와 연결됩니다. 특히 당시 여성들이 가나 문자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뛰어난 문학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무라사키 시키부입니다. 그녀가 쓴 『겐지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 귀족사회의 사랑과 인간관계, 권력과 삶을 그린 장편 이야기입니다. 약 1,00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일본 고전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도 유명합니다. 궁중에서 생활했던 경험과 자연, 사람에 대한 생각 등을 특유의 감각으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이를 통해 당시 귀족들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꼈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옷차림 역시 매우 화려했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귀족 여성 복식을 이야기할 때 흔히 ‘주니히토에’라고 부르는 여러 겹의 옷이 유명합니다. 옷의 색을 어떻게 조합하는지도 계절과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건축에서는 귀족 저택을 중심으로 발전한 ‘신덴즈쿠리’ 양식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 앞에 연못과 정원을 만들고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오늘날 교토의 여러 전통적인 경관을 이해할 때도 헤이안 시대의 미의식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문화가 발전하는 동안 일본 사회의 권력구조는 서서히 바뀌고 있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로 갈수록 무사들이 중앙정치에도 깊숙이 등장했고 결국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가 충돌하는 겐페이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헤이안 시대는 12세기말 무사정권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아름다운 시와 문학을 즐기던 귀족들의 시대 뒤에서 성장한 사무라이들이 이제 일본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헤이안 시대는 교토를 중심으로 귀족문화와 문학이 화려하게 꽃피는 동시에 무사 세력이 성장하기 시작한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다음 7번 글에서는 바로 그 주인공인 ‘사무라이는 어떻게 등장했을까?’를 쉽고 재미있게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