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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다이묘가 싸웠던 일본 전국시대, 도대체 어떤 시대였을까?

양쿠미 2026. 9. 6. 17:05

오닌의 난 이후 무로마치 막부의 힘이 약해지면서 일본 각 지역에서는 자신만의 영지를 지배하는 강력한 다이묘들이 성장했습니다.

오늘은 수많은 다이묘가 싸웠던 일본 전국시대는 도대체 어떤 나라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중앙의 명령보다 실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전국시대라고 하면 사무라이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하고 새로운 무기가 전해지는 등 일본 사회를 크게 바꾸는 변화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유명한 무장들이 등장했던 전국시대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수많은 다이묘가 싸웠던 일본 전국시대, 도대체 어떤 시대였을까?
수많은 다이묘가 싸웠던 일본 전국시대, 도대체 어떤 시대였을까?

전국시대는 왜 시작됐을까? 각 지역의 다이묘가 주인이 되다

일본의 전국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하나의 연도로 정확하게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에 걸쳐 여러 지역의 다이묘들이 경쟁했던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특히 1467년 시작된 오닌의 난은 기존의 정치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전국시대가 본격화되는 중요한 계기로 자주 언급됩니다.

 

당시에도 교토에는 무로마치 막부와 쇼군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막부가 전국의 무사들을 이전처럼 강하게 통제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중앙의 힘이 약해진 사이 지방에서는 자신들의 군사력과 경제적인 기반을 가진 세력들이 성장했습니다.

이들을 흔히 ‘센고쿠 다이묘’, 즉 전국 다이묘라고 부릅니다. 과거의 슈고 다이묘가 막부의 직책을 바탕으로 지방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전국 다이묘 가운데에는 기존의 지배자를 밀어내고 스스로 지역의 실권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때 ‘하극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래에 있던 사람이 위의 사람을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래된 가문이나 높은 신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권력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이묘들은 매일 전쟁만 했을까요? 실제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려면 싸움 이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영지 안의 농업 생산을 안정시키고 세금을 거두며 도로와 시장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부하 무사들을 조직하고 지역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일부 전국 다이묘는 자신의 영지에서 적용할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분국법’이라고 부릅니다. 다이묘가 독자적인 규칙을 정하고 영지를 관리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의 정치권력이 강해졌음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전국 다이묘로는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 모토나리, 호조 우지야스 등이 있습니다. 각자는 서로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주변 세력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넓히려 했습니다.

 

따라서 전국시대는 단순히 ‘일본 전체가 아무 질서 없이 싸우던 시대’라고만 이해하기보다는 중앙의 힘이 약해진 가운데 각 지역에서 새로운 지배자들이 자신만의 정치와 군사체제를 만들어가던 시대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 아래에 도시가 생겼다? 전쟁 속에서도 달라진 사람들의 생활

전국시대의 다이묘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 가운데 하나는 ‘성’이었습니다. 성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군사적인 거점이면서 동시에 다이묘가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는 정치적인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관광지에서 보는 것처럼 거대한 천수각과 화려한 돌담을 갖춘 성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국시대 초기에는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만든 산성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성을 만들면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쉽고 공격을 방어하는 데 유리했습니다.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다이묘의 통치방식이 변화하면서 성의 모습도 점차 달라졌습니다. 평지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 대규모 성을 건설하고 주변에 무사와 상인, 장인들을 모으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를 ‘조카마치’, 즉 성하마을이라고 합니다. 다이묘의 성 주변에는 부하 무사들의 거주지가 만들어지고 상인과 장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도 발달하면서 성은 군사시설을 넘어 지역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상업도 활발해졌습니다.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중요해지고 시장과 항구가 성장했습니다. 일부 다이묘들은 자신의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상업을 장려하고 상인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농업 역시 전쟁만큼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군대를 유지하려면 많은 식량이 필요했고 영지에서 안정적으로 세금을 거두려면 농업 생산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다이묘들은 치수사업이나 농지 관리 등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전쟁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무라이끼리의 일대일 결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이묘들은 많은 병력을 조직했고 그 가운데에는 ‘아시가루’라고 불리는 보병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투의 규모가 커지면서 개인의 뛰어난 무예뿐 아니라 많은 병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휘하는지, 식량과 무기를 어떻게 공급하는지, 어떤 성을 확보하는지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전국시대의 성을 바라볼 때 단순히 사무라이들이 싸우던 요새라고만 생각하면 그 역할의 절반만 보는 셈입니다. 성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시장이 생기면서 훗날 일본의 주요 도시로 성장한 곳도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경쟁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불안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각 다이묘가 살아남기 위해 영지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정치와 경제, 도시의 모습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총을 든 사무라이가 등장했다? 유럽인의 도착과 달라진 전쟁

16세기가 되면서 전국시대 일본에는 바다 건너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1543년 포르투갈인이 일본의 다네가시마에 도착한 사건이 특히 유명합니다. 이들을 통해 일본에 조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에서는 당시 전해진 화승총을 다네가시마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장인들은 새로운 무기의 구조를 익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조총은 여러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물론 조총이 들어온 순간부터 일본의 모든 전쟁 방식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닙니다. 활과 창, 칼 등 기존 무기들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이묘들이 많은 조총병을 조직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쟁에서 화기의 중요성이 점차 커졌습니다.

 

유럽인들과 함께 새로운 물건과 문화도 들어왔습니다. 일본과 포르투갈 상인 등을 연결하는 교역이 이루어졌고 중국의 비단을 비롯한 여러 상품이 거래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유럽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문화를 ‘남만문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549년에는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그리스도교가 전해졌고 일부 다이묘와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무역과 새로운 종교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규슈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다이묘들에게 해외무역은 단순히 신기한 외국 물건을 얻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역을 통해 부를 확보하고 조총이나 화약의 재료처럼 군사적으로 중요한 물품을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항구와 상인을 확보하는 것이 세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국시대 후반에는 수많은 경쟁자 가운데 주변 세력을 차례로 물리치며 매우 빠르게 영토를 넓히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오다 노부나가입니다.

 

노부나가는 조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성공을 새로운 무기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군사력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성과 도시의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기존 질서를 흔들며 세력을 확대했습니다.

1573년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몰아냈습니다. 이 사건을 일반적으로 무로마치 막부가 끝나는 중요한 시점으로 봅니다. 오랫동안 이름이나마 유지되었던 아시카가씨의 막부가 역사에서 퇴장하고 일본의 통일을 둘러싼 경쟁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일본 통일을 완성하기 전에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맞게 됩니다. 1582년 자신의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으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부나가가 이루지 못한 통일을 이어갔고, 다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지막 승자로 떠오릅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전국시대가 어떻게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흐름입니다. 전국시대는 수많은 다이묘가 생존을 걸고 경쟁했던 전쟁의 시대였지만, 성과 도시의 성장, 상업의 발달과 새로운 무기의 도입처럼 일본 사회가 크게 변화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히며 일본 통일의 길을 열었던 오다 노부나가는 어떤 인물이었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