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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전투가 일본의 주인을 바꿨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양쿠미 2026. 9. 7. 17:05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자 어렵게 이루어진 일본의 통일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세키가하라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단 하루의 전투로 일본의 주인을 바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남았지만 스스로 정치를 이끌기에는 너무 어렸고, 유력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권력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결국 일본의 여러 다이묘는 이에야스를 따르는 동군과 그에 맞서는 서군으로 나뉘었고,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격돌합니다.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가운데 하나인 세키가하라 전투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마지막 승자가 되었을까요?

단 하루의 전투가 일본의 주인을 바꿨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단 하루의 전투가 일본의 주인을 바꿨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시가 죽자 다시 시작된 권력 경쟁, 동군과 서군은 왜 나뉘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43년 미카와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아이치현 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주변의 강한 세력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점차 자신의 기반을 마련했고, 오다 노부나가와 오랫동안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전국시대의 강력한 다이묘로 성장했습니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1584년 고마키·나가쿠테 전투에서는 양측이 충돌했지만 결국 정치적으로 관계를 조정했고,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지배질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이에야스에게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의 영지를 기존의 지역에서 간토 지방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간토는 정치의 중심이었던 교토와 오사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넓은 영토와 발전 가능성을 가진 지역이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에도를 자신의 중심지로 정하고 성과 도시를 정비했습니다. 당시 에도는 오늘날의 도쿄입니다. 훗날 일본 최대의 도시가 되는 에도가 역사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날 당시 그의 아들 히데요리는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생전에 유력 다이묘들이 아들을 보좌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했지만 자신이라는 강력한 중심이 사라지자 세력 사이의 균형도 흔들렸습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다이묘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이에야스였습니다. 그는 다른 다이묘들과 혼인관계를 맺는 등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를 경계하는 세력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이에야스에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에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있었습니다. 미쓰나리는 전장에서만 이름을 알린 무장이라기보다 히데요시 아래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그는 여러 다이묘와 함께 이에야스에 맞서는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유력 다이묘들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동군’, 미쓰나리를 비롯해 이에야스에 반대한 세력을 ‘서군’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를 단순히 ‘도쿠가와 가문과 도요토미 가문의 전쟁’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동군에도 도요토미 정권과 깊은 관계를 가진 다이묘들이 있었고, 각자가 어느 편에 섰는지에는 개인적인 갈등과 영지 문제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1600년, 일본의 권력 향방을 결정하게 될 양측의 군대가 세키가하라로 모여들었습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왜 동군이 승리했을까?

세키가하라는 오늘날 기후현에 있는 지역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1600년 10월 21일,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던 달력으로는 9월 15일에 동군과 서군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양측은 치열하게 맞섰습니다. 서군에는 이시다 미쓰나리뿐 아니라 우키타 히데이에, 오타니 요시쓰구 등 여러 유력 무장이 참여했고 동군에는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등 여러 다이묘가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서군에는 전투의 흐름을 바꿀 중요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입니다.

히데아키는 상당한 병력을 이끌고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전투가 시작된 뒤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군에 속해 있었지만 이에야스 측과도 비밀리에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히데아키의 군대가 서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른 일부 세력까지 움직이면서 전세는 동군 쪽으로 크게 기울었습니다. 서군의 진형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흔히 ‘하루 만에 일본의 운명이 결정된 전투’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격적인 전투 자체는 하루 안에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그 하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이에야스는 여러 다이묘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양측은 서로 자신의 편을 늘리기 위한 정치적인 움직임을 계속했습니다.

또한 세키가하라 이외의 일본 여러 지역에서도 동군과 서군에 관련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따라서 일본 전체의 권력 다툼이 단 하나의 들판에서 하루 만에 시작되고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세키가하라의 승리는 이에야스에게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 이에야스는 자신에게 맞섰던 다이묘들의 영지를 몰수하거나 크게 줄였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편에서 싸운 다이묘들에게는 새로운 영지를 주었습니다.

 

이러한 영지 재편을 통해 일본 각지의 다이묘 세력관계가 크게 바뀌었고 이에야스는 압도적인 정치적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노부나가가 통일의 길을 열고 히데요시가 전국을 하나의 지배질서 아래 넣었다면,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그 위에서 자신의 가문을 중심으로 장기간 유지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 준비를 시작한 것입니다.

 

1603년 에도 막부의 탄생, 그런데 도요토미씨는 아직 남아 있었다?

세키가하라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1603년 조정으로부터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됩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정치적 중심지였던 에도에 막부를 두었습니다. 이것이 약 260년 동안 이어지는 에도 막부의 시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에야스가 쇼군의 자리를 아주 오래 유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605년 그는 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쇼군 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에야스가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에도 중요한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쇼군 자리를 일찍 아들에게 넘긴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 앞으로도 계속 정권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도요토미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성을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가문을 따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이에야스에게 이는 장기적으로 불안한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도쿠가와 측과 도요토미 측의 긴장은 다시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1614년 ‘오사카 겨울 전투’가 벌어졌고 이듬해에는 ‘오사카 여름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1615년 오사카성이 함락되고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죽으면서 도요토미씨의 정치적 세력은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이에야스는 같은 해 다이묘들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막부는 이후에도 제도를 정비하면서 각 지역의 다이묘들이 지나치게 강해지거나 막부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관리했습니다.

1616년 이에야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도쿠가와 가문의 정권은 계속되었습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완성하지 못했던 장기간의 안정적인 무사정권이 마침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국시대에는 수많은 다이묘가 영토를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습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가 만들어진 이후 일본에서는 대규모 내전이 크게 줄어들고 비교적 긴 평화의 시대가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에도는 작은 지역의 중심지에서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고, 무사뿐 아니라 상인과 장인들의 생활과 문화도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전통적인 일본문화라고 떠올리는 여러 모습 가운데 상당수가 이 긴 에도 시대에 발전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에도 막부를 세우고, 이후 도요토미 세력까지 무너지면서 도쿠가와 가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약 260년 동안 이어진 에도 시대에 사무라이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에도는 어떻게 거대한 도시로 성장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