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생들은 왜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을까? 부카츠와 동아리 문화
일본 학교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거나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고, 음악실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부카츠(部活)’입니다. 일본 학생들은 왜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는 것인지, 부카츠와 동아리 문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동아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학생들에게는 매일 연습하고 주말에도 대회에 참가할 만큼 학교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친구를 사귀고 하나의 목표에 도전하는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연습시간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의 부카츠는 왜 이렇게 발달했으며 학생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경험할까요?

운동부부터 취주악부까지, 부카츠는 어떤 활동일까?
‘부카츠’는 ‘부카쓰도(部活動)’, 즉 부활동을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정규수업 이외에 스포츠나 음악, 미술 등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참여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크게 나누면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운도부’와 문화·예술 등의 활동을 하는 ‘분카부’가 있습니다.
운동부에는 야구와 축구, 농구, 배구, 테니스, 육상, 수영 등이 있으며 검도와 유도, 궁도처럼 일본의 전통적인 무도와 관련된 부도 있습니다.
분카부의 종류 역시 다양합니다. 취주악부와 합창부, 미술부, 연극부, 과학부, 사진부, 서예부, 다도부 등이 대표적입니다. 학교에 따라 만화나 애니메이션, 컴퓨터, 방송 등 학생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활동도 운영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학교 동아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일본의 일부 부카츠는 활동시간과 강도가 상당합니다. 특히 대회를 목표로 하는 운동부나 취주악부 등은 정규수업이 끝난 뒤 거의 매일 연습하기도 합니다.
주말이나 방학에도 연습과 경기가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카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에게는 학교생활에서 수업만큼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활동이 되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부카츠에 사용할까요?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즐긴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활동을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대회나 공연이라는 목표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큽니다. 일본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에게 여러 부가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고 새 부원을 모집합니다. 학생은 관심 있는 곳을 둘러본 뒤 원하는 부에 들어갑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반드시 부카츠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의 방침과 학생 개인의 상황에 따라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활동의 강도 역시 학교와 부마다 크게 다릅니다.
따라서 일본 학생들이 모두 방과 후 늦게까지 운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일부 학생에게 부카츠가 학교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선배에게는 ‘센파이’, 후배에게는 ‘코하이’? 부카츠의 인간관계
일본의 부카츠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센파이(先輩)’와 ‘코하이(後輩)’입니다. 우리말의 선배와 후배에 해당합니다.
한두 학년 먼저 부에 들어온 학생은 선배가 되고 나중에 들어온 학생은 후배가 됩니다. 단순히 나이만으로 결정된다기보다 그 조직에서 먼저 활동한 사람이 선배가 되는 개념입니다.
선배는 후배에게 운동방법이나 악기 연주법, 부의 규칙 등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후배는 선배가 쌓아온 경험을 배우면서 활동에 적응합니다.
일본어의 말투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후배가 선배에게 비교적 공손한 표현을 사용하고 선배를 이름 대신 ‘센파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일본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전통적으로 규율이 강한 운동부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입생이 장비를 정리하거나 여러 잡무를 맡고 상급생의 지시에 따르는 문화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가 언제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선후배 관계나 체벌, 괴롭힘 등은 오랫동안 일본 학교 스포츠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엄격한 관행을 당연한 전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학생의 안전과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부카츠에서 만들어지는 긍정적인 인간관계도 있습니다. 여러 학년의 학생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연습하면서 평소 같은 반 친구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후배였던 학생이 다음 해에는 새로운 후배를 가르치는 선배가 됩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시 다음 학생에게 전달하면서 부의 방식과 전통이 이어집니다.
졸업한 뒤에도 부카츠의 추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함께 힘든 연습을 하고 경기와 공연을 준비했던 경험이 학창 시절의 강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선배의 마지막 대회나 졸업을 앞두고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러한 부카츠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시엔을 꿈꾸는 야구부, 그런데 부카츠가 달라지고 있다고?
일본의 부카츠 가운데 대중적으로 특히 유명한 것이 고등학교 야구입니다.
전국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꿈꾸는 무대 가운데 하나가 효고현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입니다. 특히 여름에 열리는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는 일본에서 큰 관심을 받습니다.
지역 예선을 통과한 학교들이 고시엔에 모여 경기를 치르며 텔레비전으로도 전국에 중계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고시엔’이라는 말은 단순히 야구장의 이름을 넘어 고교 야구선수들이 꿈꾸는 무대를 상징하는 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와 배구, 농구, 육상 등에도 전국 규모의 학교대회가 있습니다. 문화계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일본의 취주악부는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 학교가 대회를 목표로 오랜 시간 합주를 연습하기도 하며 전국 규모의 경연도 열립니다.
하지만 부카츠의 이러한 열정적인 모습에는 고민도 존재합니다.
오랜 연습시간은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정규수업을 받은 뒤 저녁까지 연습하고 주말에도 경기에 참가한다면 휴식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줄어듭니다.
학생뿐 아니라 지도하는 교사의 부담도 문제입니다. 일본 학교에서는 교사가 부카츠의 고문을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신이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종목을 담당하거나 주말까지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교사의 장시간 근무를 줄이고 학생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부카츠의 운영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학교 부활동 가운데 일부를 학교만 담당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스포츠단체나 문화단체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학교의 교사가 모든 활동을 책임지는 대신 지역의 전문 지도자 등이 학생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저출생 역시 변화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줄면서 한 학교에서 팀을 구성하기 어려워진 지역도 있습니다. 여러 학교 학생이 함께 팀을 만들거나 학교 밖의 지역 활동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필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일본의 부카츠는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학교 안에서 매일 늦게까지 연습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자신의 생활과 학업, 휴식 사이에서 보다 자유롭게 활동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부카츠는 단순히 수업이 끝난 뒤 즐기는 취미활동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운동과 음악, 미술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도전하면서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고 공동의 목표를 경험해 왔습니다.
고시엔을 꿈꾸는 야구부처럼 열정적인 부카츠는 일본 학교문화의 상징적인 모습이 되었지만 긴 연습시간과 교사의 부담 같은 문제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그 장점을 살리면서 운영방식을 새롭게 바꾸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운동장이나 음악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면, 그 장면에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또 하나의 일본 학교생활, 부카츠 문화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