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오랜 혼란이 끝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세우면서 일본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은 전쟁이 끝난 에도 시대, 사무라이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약 260년 동안 이어진 에도 시대에는 전국을 뒤흔드는 대규모 내전이 크게 줄어들었고 도시와 상업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도쿄가 된 에도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거대한 도시가 만들어졌으며, 무사들의 생활도 전쟁이 일상이었던 전국시대와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평화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고, 우리가 떠올리는 전통적인 일본문화는 어떻게 발전했을까요?

쇼군과 다이묘가 함께 다스렸다? 에도 막부가 오랫동안 유지된 방법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타이쇼군에 임명되면서 에도 막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치의 중심지는 교토가 아니라 이에야스가 기반을 닦아놓았던 에도였습니다. 교토에는 여전히 천황과 조정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정치에서는 에도의 쇼군과 막부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쇼군이 오늘날의 중앙정부처럼 전국의 모든 지역을 직접 관리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 곳곳에는 다이묘가 다스리는 ‘번’이 존재했습니다. 막부가 전국적인 정치질서의 중심에 있고 각 지역에서는 다이묘가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는 구조였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후대에 ‘막번체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막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가운데 하나는 강력한 다이묘가 성장하여 도쿠가와 가문에 도전하는 일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다이묘들은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에 따라 여러 집단으로 구분되었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친족인 신판 다이묘, 오래전부터 이에야스를 따랐던 후다이 다이묘, 세키가하라 전투 전후로 도쿠가와에 복속한 도자마 다이묘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도자마 다이묘 가운데에는 넓은 영지를 가진 강력한 세력도 있었기 때문에 막부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제도가 ‘산킨코타이’입니다. 제도가 정비되면서 다이묘들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자신의 영지와 에도를 오가며 생활해야 했고, 다이묘의 처자 등은 에도에 거주했습니다.
다이묘가 수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에도에 저택을 유지하는 데에도 상당한 부담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이묘가 막부에 대항할 만큼 막대한 힘을 축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킨코타이는 예상하지 못한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기적으로 전국의 도로를 이동하면서 숙박시설과 상점이 발달했고 지역 사이의 물자와 문화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
대표적인 도로가 에도와 교토를 연결한 도카이도입니다. 길을 따라 역참 마을이 발달했고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음식점도 생겨났습니다. 사람과 물건, 소식이 전국을 이동하는 교통망이 발전한 것입니다.
막부는 다이묘를 통제하고 각 지역의 세력관계를 관리하면서 오랜 기간 정치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전국시대처럼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대규모 전쟁을 반복하던 모습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평화가 이어지자 일본 사회에는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무사들의 역할이 달라지고,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상인과 장인들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진 것입니다.
전쟁이 사라지자 사무라이는 무엇을 했을까? 농민·장인·상인의 생활
에도 시대 사회를 설명할 때 흔히 ‘사농공상’이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무사·농민·장인·상인을 차례로 나눈 말입니다. 다만 실제 에도 시대의 신분과 사회구조는 이 네 단어만으로 깔끔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당시 사회를 사농공상의 고정된 네 계급으로만 설명하는 방식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사와 농민, 도시의 상인과 장인 등이 서로 다른 역할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에도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무사였습니다. 전국시대의 무사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도 시대에는 오랫동안 큰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무라이들이 모두 필요 없어졌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무사들은 각 번이나 막부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맡고 관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칼을 차고 무사의 신분을 유지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전투보다 문서를 작성하고 행정을 처리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무사들에게도 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학문이 중요해졌습니다. 유교, 특히 성리학은 에도 시대의 정치와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농민들은 당시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생산자였습니다. 쌀은 사람들의 주식인 동시에 세금을 거두고 영지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벼농사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작물과 상품작물도 생산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장인들이 각종 생활용품을 만들었습니다. 목수와 대장장이를 비롯하여 옷과 종이, 도자기 등 여러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사람들이 상인입니다. 공식적인 사회적 위신과는 별개로 도시경제가 발달하면서 많은 상품을 유통하거나 거래하는 상인들 가운데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오사카는 전국의 쌀과 물자가 모이는 상업도시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각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 오사카로 모였기 때문에 ‘천하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에도와 오사카, 교토 같은 도시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이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공연을 관람하며 음식을 즐기는 도시문화도 발전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무사가 사회의 중심에 있었지만 경제와 문화에서는 상인과 평범한 도시 주민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었습니다.
인구 백만의 거대도시 에도, 스시와 가부키도 이 시대에 발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처음 에도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을 당시 이곳은 오늘날의 도쿄와 같은 거대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막부가 세워지고 전국의 다이묘와 무사들이 모여들면서 에도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다이묘들은 에도에 저택을 마련했고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무사와 수행원도 도시에서 생활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에게 음식과 옷, 생활용품을 제공하기 위해 상인과 장인들도 모여들었습니다.
17세기 후반 이후 에도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18세기 무렵에는 인구가 100만 명 안팎에 이르렀다고 추정되기도 합니다. 다만 당시의 정확한 인구를 오늘날처럼 조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치는 자료와 추정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에도만의 독특한 도시문화도 발전했습니다. 특히 상인과 장인 등 도시 주민들이 즐기는 대중문화가 활발해졌습니다.
대표적인 공연문화가 ‘가부키’입니다. 가부키는 17세기 초에 시작되어 변화와 규제를 거치면서 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성장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독특한 연기,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습니다.
‘우키요에’도 에도 시대를 대표합니다. 목판화 기술을 이용해 유명 배우나 미인, 풍경과 일상생활 등을 표현했습니다.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일부 작품은 비교적 넓은 계층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우타가와 히로시게 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등장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음식인 스시도 에도 시대와 흥미로운 관련이 있습니다. 생선을 오래 보존하기 위한 초기 형태의 스시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에도 후기에는 식초로 간을 한 밥 위에 생선 등을 올리는 ‘니기리즈시’가 에도에서 발달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의 고급 초밥집에서 천천히 먹는 음식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바쁜 도시 사람들이 비교적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의 패스트푸드와 비슷한 성격이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소바와 덴푸라 같은 음식도 에도의 도시문화 속에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시 인구가 많아지면서 밖에서 간단히 음식을 사 먹는 문화가 발달한 것입니다.
서민들의 교육도 확대되었습니다. ‘데라코야’라고 불리는 교육 공간에서는 읽기와 쓰기, 계산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상업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장부를 기록하고 편지를 읽으며 계산하는 능력이 실제 생활에도 유용했습니다.
이처럼 에도 시대는 단순히 사무라이와 쇼군만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대규모 내전이 줄어들면서 도시와 상업, 교육과 대중문화가 성장했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에도 막부의 질서를 뒤흔드는 변화가 바다 건너에서 다가옵니다. 서양 국가의 선박들이 일본 주변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고,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일본에 도착합니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 아래 비교적 긴 평화가 이어지면서 무사의 역할이 변화하고 도시와 상업, 서민문화가 크게 성장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굳게 유지되던 막부의 질서는 검은 배를 이끌고 나타난 페리 제독과 개항 요구를 계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