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시대 후반, 일본 앞바다에 낯선 검은색 증기선들이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일본을 뒤흔든 검은 배와 페리 제독의 등장과 일본의 개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였습니다. 오랫동안 외국과의 교류를 엄격하게 제한해 온 에도 막부에 미국은 항구를 열 것을 요구했습니다. 거대한 군함과 새로운 기술을 눈앞에서 본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사건은 결국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는 변화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정말 외국과 완전히 단절된 나라였을까요?
페리가 오기 전의 일본부터 개항 이후의 변화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은 정말 200년 동안 외국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을까?
에도 시대의 대외정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쇄국’입니다. 일본이 나라의 문을 굳게 닫고 약 200년 동안 외국과 거의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에도 막부는 17세기 전반 여러 정책을 통해 일본인의 해외 이동과 그리스도교 선교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유럽 국가들과의 교류도 통제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나가사키입니다. 막부는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 상인들과 제한적인 교역을 허용했습니다. 중국 상인들도 나가사키에서 무역했습니다. 따라서 해외의 물건과 지식이 일본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존재했습니다.
조선과의 관계도 이어졌습니다. 조선은 에도 시대에 여러 차례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습니다. 조선통신사는 외교적인 역할뿐 아니라 양국의 학문과 문화가 교류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쓰시마번이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북쪽에서는 마쓰마에번을 통해 아이누와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사쓰마번은 류큐왕국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즉 에도 시대 일본에는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여러 통로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의 학문은 ‘난학’이라고 불렸습니다. 일본의 학자들은 네덜란드어로 된 책 등을 통해 서양의 의학과 천문학, 과학기술 등을 공부했습니다. 특히 18세기 이후 난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따라서 에도 시대 일본을 ‘외부 세계를 전혀 몰랐던 나라’라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막부가 해외와의 관계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허용된 상대와 장소를 제한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런데 18세기말부터 일본 주변에 러시아와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양 국가들은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었고 일본에도 통상과 항구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19세기에는 서양 열강이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는 모습이 일본에도 알려졌습니다. 청나라가 영국과 벌인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양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서 중국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에서도 위기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1853년, 그동안의 외국 선박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함대가 에도 가까운 바다에 나타났습니다.
1853년 나타난 ‘흑선’, 페리는 왜 일본에 문을 열라고 요구했을까?
1853년 7월 미국 해군의 매슈 페리 제독이 네 척의 함선을 이끌고 오늘날 도쿄만에 해당하는 에도만의 우라가 부근에 나타났습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이 함대를 ‘구로후네’, 즉 ‘흑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양식 대형 선박의 검은 선체와 증기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페리는 미국 대통령의 국서를 일본에 전달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것 가운데에는 미국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항구를 마련하고 난파된 미국인을 보호하며 양국이 관계를 맺자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포경선과 상선들이 태평양을 활발하게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배에 필요한 물과 식량, 연료 등을 공급받을 항구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와의 교역 확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부 입장에서 페리의 등장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요구를 거절하면 미국과 군사적인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항구를 열면 오랫동안 유지했던 대외정책을 크게 바꿔야 했습니다.
페리는 즉시 답을 요구하기보다 국서를 전달한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고 일본을 떠났습니다. 막부는 어떻게 대응할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막부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다이묘에게 의견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막부가 혼자서 결정하기 어려울 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1854년 페리는 더 많은 함선을 이끌고 다시 일본을 찾았습니다. 결국 막부는 미국과 ‘미일화친조약’, 즉 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시모다와 하코다테가 미국 선박에 개방되었고 미국 선박에 필요한 물자 공급과 난파자 보호 등이 약속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영사가 시모다에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때부터 곧바로 오늘날과 같은 자유로운 무역이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본격적인 통상관계는 이후 체결된 조약을 통해 확대되었습니다.
1858년 일본은 미국과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다른 서양 국가들과도 비슷한 조약을 맺으면서 여러 항구가 무역을 위해 개방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조약들이 일본에 불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외국인의 치외법권을 인정하고 일본이 관세를 자유롭게 정하는 데 제한을 받는 등 불평등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후 일본이 서양식 국가체제를 빠르게 갖추고 조약을 개정하려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개항했을 뿐인데 막부가 무너졌다? 일본 사회가 크게 흔들린 이유
일본이 항구를 개방하자 해외의 상품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물건도 외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막부가 관리해 온 경제와 사회에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특히 개항 이후 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적인 혼란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불만도 커졌습니다. 여기에 막부가 서양 국가들과 맺은 조약을 둘러싼 정치적인 갈등이 더해졌습니다.
당시 조약 체결 과정에서는 천황의 동의를 둘러싼 문제도 중요했습니다. 막부가 외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늘어나면서 교토의 천황과 조정이 정치적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인 구호가 ‘존왕양이’입니다. ‘왕을 받들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일본의 천황을 가리킵니다.
처음에는 외국세력을 일본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조슈번과 사쓰마번 등에서는 막부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양 군대와 충돌하면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사쓰마번은 영국과 전투를 벌였고 조슈번 역시 서양 여러 나라의 함대와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군사력과 기술을 직접 경험한 일부 세력은 단순히 외국인을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일본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서양의 무기와 기술, 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워 일본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한때 서로 경쟁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도 결국 막부를 무너뜨린다는 목표 아래 손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삿초동맹’입니다.
막부 내부에서도 개혁을 시도했지만 정치적인 혼란을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867년 정치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겠다는 ‘대정봉환’을 실시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갈등이 그 순간 평화롭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막부 측 세력과 새로운 정부 측 세력 사이에 보신전쟁이 벌어졌고 결국 새 정부 측이 승리하면서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1868년에는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일본은 정치와 군사, 교육과 산업 등 사회 전반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메이지유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페리의 흑선이 도착하자 곧바로 에도 막부가 무너졌다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페리의 등장은 이미 여러 문제를 안고 있던 막부의 정치질서를 크게 흔든 중요한 계기였고, 이후 약 15년에 걸친 여러 갈등과 변화가 이어지면서 막부가 끝난 것입니다.
페리의 흑선은 일본이 외부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현실을 강하게 보여주었고, 개항 이후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결국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의 종말로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일본은 쇼군이 다스리던 무사정권을 끝내고, 천황을 중심으로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나라 전체를 바꾸는 메이지유신과 근대화의 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