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나타난 이후 일본 사회는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사무라이 시대의 끝 그리고 메이지유신과 일본의 놀라운 변화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서양 국가들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자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이 커졌고, 결국 약 260년 동안 이어졌던 에도 막부가 역사에서 물러났습니다. 1868년을 전후해 시작된 메이지유신은 단순히 쇼군에서 천황으로 권력자가 바뀐 사건만은 아니었습니다. 번이 사라지고 신분제도가 변화했으며 근대적인 군대와 학교, 철도와 공장이 등장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사이 일본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은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마지막 쇼군의 대정봉환, 에도 막부는 어떻게 끝났을까?
페리의 등장 이후 에도 막부는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서양 국가들이 개항을 요구하는 가운데 막부는 1854년 미국과 미일화친조약을 맺었고, 1858년에는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특히 1858년의 조약에는 일본에 불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외국인에게 일본의 법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치외법권을 인정했고 일본이 관세를 자유롭게 결정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었습니다. 막부가 이러한 조약을 체결하자 일본 내부에서는 반발이 커졌습니다.
이때 ‘존왕양이’라는 구호가 널리 등장했습니다. 천황을 받들고 외국세력을 몰아내자는 의미입니다. 막부가 외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천황과 조정을 새로운 정치적 중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조슈번과 사쓰마번은 막부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번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지만 사카모토 료마 등의 중재가 영향을 미치면서 1866년 ‘삿초동맹’이 이루어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처음부터 모두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슈번은 외국 선박을 공격하기도 했고 사쓰마번은 영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양 국가의 군사력을 경험하면서 단순히 외국인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일본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서양의 무기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군사력을 강화했습니다.
1867년에는 메이지 천황이 즉위했습니다. 같은 해 에도 막부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정치권력을 조정에 돌려주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대정봉환’입니다.
그렇다면 대정봉환과 동시에 모든 일이 평화롭게 끝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요시노부가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있었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둘러싼 세력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했습니다.
결국 1868년 막부 측과 새로운 정부 측 사이에서 보신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도바·후시미 전투를 시작으로 전쟁은 일본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새 정부군이 우세해지면서 에도성은 대규모 전투 없이 넘겨졌고, 전쟁은 일본 북쪽으로 이어졌습니다. 1869년 하코다테의 전투가 끝나면서 막부를 지지하던 주요 저항세력도 무너졌습니다.
약 700년 가까이 일본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무사정권의 시대가 끝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다는 새로운 정부가 일본을 이끌게 된 것입니다.
번도 사무라이도 사라졌다? 메이지 정부가 바꾼 일본의 사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일본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현대적인 국가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도 전국 곳곳에는 다이묘가 다스리던 번이 존재했고 에도 시대의 신분질서도 남아 있었습니다.
메이지 정부는 중앙정부가 전국을 직접 통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1871년에 실시된 ‘폐번치현’입니다.
기존의 번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정부가 관리하는 부와 현을 설치했습니다. 과거에는 각 지역의 다이묘가 자신의 번을 다스렸지만 이제는 중앙정부가 지방관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무라이의 위치도 크게 변했습니다. 에도 시대의 무사들은 각 번에 소속되어 일정한 녹봉을 받으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번이 사라지고 새로운 국가체제가 만들어지면서 기존 무사들의 특권도 점차 없어졌습니다.
1873년에는 징병령이 시행되어 특정한 무사계층만 전투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 가운데에서 병사를 모집하는 근대적인 군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76년에는 흔히 ‘폐도령’이라고 부르는 조치가 시행되어 군인이나 경찰 등 일부를 제외하고 공개적으로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칼을 찬 사무라이의 모습이 일상적인 거리 풍경에서 점차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든 무사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지위와 경제적 기반을 잃은 무사들 가운데에는 정부에 강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심으로 사쓰마 반란, 즉 세이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정부군이 승리하면서 옛 무사들이 대규모 군사력으로 정부에 맞서는 움직임은 사실상 끝나게 됩니다.
교육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872년에는 근대적인 학교제도를 만들기 위한 학제가 발표되었습니다. 정부는 보다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제를 확대하려 했습니다.
생활 모습에도 서양의 영향이 나타났습니다. 서양식 의복과 건축물이 등장하고 새로운 음식문화와 생활방식도 들어왔습니다. 도시의 일부에서는 전통적인 일본의 풍경과 서양식 건물이 함께 존재하는 독특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유명한 표현이 ‘문명개화’입니다. 서양의 지식과 기술, 생활방식이 빠르게 들어오면서 사회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모든 일본인이 갑자기 서양식 옷을 입고 전통적인 생활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변화의 속도와 모습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달랐으며 전통적인 생활과 새로운 문화가 오랫동안 함께 존재했습니다.
기차와 공장이 등장하다, 일본은 왜 그렇게 빠르게 근대화를 추진했을까?
메이지 정부가 빠른 변화를 추진한 데에는 당시 국제정세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세기에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과 산업력을 바탕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한 모습과 서양 열강이 아시아로 진출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일본 역시 국가의 힘을 키우지 못하면 서양 국가들의 압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컸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 ‘부국강병’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를 만들고 강한 군사력을 갖추겠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직접 조사하기 위해 사람들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871년 출발한 ‘이와쿠라 사절단’입니다. 이와쿠라 도모미를 비롯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사절단은 공장과 철도, 학교, 군사시설과 정치제도 등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불평등한 조약을 바로 개정하려는 목적은 충분히 이루지 못했지만 서양 국가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관찰한 경험은 이후 일본의 제도 개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통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1872년에는 신바시와 요코하마 사이에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과거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하거나 가마와 말을 이용했던 시대에서 증기기관차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부는 공장과 광산을 발전시키고 서양의 기술자들을 초빙했습니다. 일본인 학생들을 해외로 보내 새로운 기술과 학문을 배우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민간기업들도 성장하면서 산업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치제도 역시 계속 변화했습니다. 자유와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정부도 근대적인 국가제도를 정비했습니다. 1889년에는 대일본제국헌법이 공포되었고 이듬해인 1890년에는 제국의회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메이지유신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에는 매우 큰 변화였습니다. 중앙집권적인 행정체제와 군대, 학교, 산업, 교통, 법과 정치제도가 수십 년에 걸쳐 빠르게 재편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근대화가 국내의 발전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국력이 커지면서 일본은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조선을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은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연결됩니다. 따라서 메이지 시대를 이해할 때는 철도와 공장이 생긴 ‘성공적인 근대화’의 모습뿐 아니라 그 힘이 주변 국가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메이지유신은 에도 막부를 끝내고 일본의 정치·사회·군사·교육과 산업을 빠르게 바꾸어 놓은 거대한 변화였습니다.
서양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근대화로 힘을 키운 일본은 이제 국경 밖으로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이 어떻게 제국주의 국가로 변해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