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비슷한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아침 전철을 타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 동료들과 이자카야에 모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오늘은 일본 직장인의 하루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일본 회사문화의 특징과 변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샐러리맨’의 이미지도 익숙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직장문화 가운데에는 과거 고도성장기에 자리 잡은 모습도 많습니다.
일본의 회사는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요?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한다? 일본의 독특한 고용문화
일본 직장문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슈신코요(終身雇用)’, 즉 종신고용입니다.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년까지 그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장기간 근무하는 정규직 남성 직장인의 모습이 대표적인 직장인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회사는 직원을 장기간 고용하고 직원은 회사에 높은 충성심을 보이는 관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함께 많이 알려진 것이 ‘연공서열’입니다. 개인의 실적만으로 승진과 임금을 결정하기보다는 근속기간과 나이, 경험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오랫동안 회사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점차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 경로가 비교적 뚜렷했습니다.
다만 모든 일본 회사가 과거부터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똑같이 적용했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대기업의 정규직을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일본의 모든 근로자가 평생 한 회사에서 일했다고 이해하면 지나친 일반화가 됩니다.
일본에서 매년 봄이면 비슷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회사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대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일정한 시기에 취업 활동을 하는 ‘슈카쓰(就活)’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기업들이 졸업 예정자를 한꺼번에 선발하는 ‘신졸 일괄채용’도 오랫동안 중요한 채용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신입사원들은 주로 4월에 입사합니다. 일본의 학교가 4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것과 연결되어 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에게 업무뿐 아니라 명함을 건네는 방법, 전화 응대, 인사법과 비즈니스 표현 등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회사에 들어간 뒤 조직 안에서 직원을 장기간 길러낸다는 생각이 비교적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 역시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경력직 채용과 이직이 늘어나고 있으며 성과와 전문성을 중시하는 기업도 많아졌습니다. 젊은 세대 가운데에는 한 회사에 오래 머무르는 것보다 자신의 경력과 생활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일본의 ‘평생직장’은 오늘날 일본 회사생활 전체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특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면 안 된다? 회식과 인간관계 속 일본 직장생활
일본 회사문화를 이야기하면 조직의 위계질서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회사에서는 직급과 관계에 따라 사용하는 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본어에는 상대를 높이는 존경어와 자신의 행동을 낮추어 표현하는 겸양어가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친구와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정중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성에 ‘상(さん)’을 붙여 동료를 부르기도 하고 ‘부초(部長·부장)’, ‘카초(課長·과장)’처럼 직책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래처 사람과 대화할 때는 자신의 회사 사람을 높여 표현하지 않는 등 일본 비즈니스 일본어에는 독특한 규칙도 있습니다.
명함을 주고받는 ‘메이시코칸(名刺交換)’ 역시 일본의 비즈니스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입니다. 처음 만난 거래 상대와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양손으로 건네고 받은 명함을 바로 주머니에 넣지 않는 등 여러 관습이 알려져 있습니다.
퇴근 후에 이어지는 인간관계도 일본 직장문화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술이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임을 ‘노미카이(飲み会)’라고 합니다. 신입사원을 환영하는 ‘칸게이카이’, 떠나는 사람을 위한 ‘소베츠카이’,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갖는 ‘보넨카이’ 등 다양한 모임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자리가 단순한 식사를 넘어 회사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중요한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업무시간에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선후배가 가까워지는 자리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쉬고 싶은 사람에게 잦은 모임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상사가 참석하는 자리를 거절하기 어렵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음주를 권하는 분위기는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았는데 먼저 가기 어렵다’는 식의 분위기 역시 일본의 전통적인 직장문화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실제 업무가 끝났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계속 일하면 혼자 먼저 일어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현재 모든 일본 회사가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업무와 사생활을 구분하려는 생각이 커졌고 회사가 회식 참여를 사실상 강요하는 문화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습니다. 회사의 규모와 업종, 세대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상당히 다릅니다.
따라서 일본 직장문화를 이해할 때는 ‘일본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외우기보다 전통적으로 조직의 조화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이 현재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야근하는 직장인의 나라? 일본 회사문화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일본의 직장생활 하면 늦은 밤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는 샐러리맨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장시간 근무가 사회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본어가 ‘가로시(過労死)’, 즉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사망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표현이 해외에서도 알려질 정도로 일본의 과로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회사에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를 성실함과 연결해 바라보던 문화도 있었습니다. 실제 업무의 효율보다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불필요한 야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장시간 근무를 줄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이른바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제도에서는 시간 외 근무에 상한을 두는 등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재택근무와 온라인 회의가 확산된 것도 회사생활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모든 업종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매일 같은 사무실에 모여야 한다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근무형태를 경험한 회사가 많아졌습니다.
복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한여름에도 정장과 넥타이를 갖춰 입은 직장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일본에서는 2005년부터 정부가 ‘쿨 비즈(Cool Biz)’를 추진했습니다. 냉방 사용을 줄이면서도 더운 계절에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넥타이와 재킷을 생략하는 등 가벼운 복장을 권장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을 허용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물론 금융이나 영업처럼 여전히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일본 직장인의 옷차림 역시 하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회사의 이름이나 안정성뿐 아니라 휴일, 근무시간, 자신의 성장 가능성,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근무환경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낸 전통적인 직장인상은 여전히 대중문화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일본의 직장인은 대기업 정규직부터 중소기업 직원, 계약직과 시간제 근로자, 프리랜서와 재택근무자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회사문화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옛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옛 모습 그대로 멈춰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조직 중심의 문화와 개인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함께 존재하면서 일본의 직장생활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신입사원 일괄채용, 엄격한 비즈니스 예절과 회식문화는 오랫동안 일본 직장생활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특징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조직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직과 경력직 채용이 늘고 장시간 근무를 줄이려는 움직임과 다양한 근무방식이 확산되면서 일본 회사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정장을 입고 만원 전철에 올라 밤늦게 귀가하는 ‘샐러리맨’의 모습만으로 오늘날 일본 직장인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진 셈입니다.